소녀종말여행

Published by 연유 on

애니메이션 화가 2년도 전에 된 작품이고, 꽤 유명했었던 걸로 보아 내가 지금까지 이 작품을 찾지 못 한 것이 의아스러운데, 아마 작품의 이름에 대놓고 소녀가 들어가 있다는 점, 그리고 뭔가 군수 물자를 어린 여자아이가 타고 다닌다는 점 때문에 썸네일과 제목만 보고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 같다.

우연히 성운상 역대 수상작 목록을 보니 이 작품이 2019년 수상작이기에 시놉시스를 보니까, 밀리터리물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주말 간 보게 되었다.

작품은 미래에 세계 대전으로 인해 멸망해버린 문명에서 두 소녀가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한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설정과 내용의 전개가 정말 흥미로웠다.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내용을 그냥 적어본다.

작중 주인공은 치토와 유리(전자는 아시아 계로 추정되고, 후자는 유럽 계로 생각된다.)이다. 치토의 경우에는 지극히 전형적인 상식인의 포지션을 하고 있으며, 유리의 경우에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캐릭터이다.

유리의 경우에는 “치토에게 총을 겨눈다.”, “치토가 식량 생산소의 분쇄 레일에 올라가 있는데, 가동 시키면서 즐긴다.”, “초고대 공격 무기로 주변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놓고 즐긴다.”라는 행동을 하는 조금 격하게 말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행동이 결국에는 남에게 음식을 나눠주거나, 서로 의지하는 행동으로 양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식량으로만 보던 생선을 지키는 행동을 하거나, (치토에게 한 대 맞고) 전쟁은 생각해보면 좋은 것이 아니다 (…) 라고 말하면서 교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둘이 최상층에 가면서 유리가 공감 능력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보면 악의 없이 성악에 가까운 캐릭터가 처한 환경과 주변 인물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고찰의 결과가 유리가 아닐까 싶다. 유리가 살았던 삶과 만난 동반자가 치토가 아니었다면, 마지막에 삶이란 아름다웠다는 고찰을 하지도 못한 채, 유리는 방화쇠를 당기면서 살생하는 인물에 가깝지 않았을까?

작중 삶,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여러 번 나온다. 작중 주인공과 만나는 사람들의 목표 (살아가는 것과 더불어 상층을 향해서 가는 것, 층의 지도를 기록하는 것, 하늘을 날아 타 도시로 가는 것)는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것 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목표이다. 지도를 지키기 위한 카나자와의 행동, 이시이의 목숨을 건 비행, 그리고 최종적으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최상층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다가가는 주인공의 행동은 단순히 이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목표를 자신의 삶에 투영하고 있다. 삶이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찰을 남긴다.

이시이를 만난 이후의 상층부에는 (어쩌면 더 이상은 하층부에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주인공들은 인공지능과 조우하게 된다. 처음 만난 물고기 관리 인공지능에게 생명이란 무엇인지, 인공지능 로봇도 생명인지 묻는 질문에 로봇은 간단히 “생명이란 정의에 따라 다릅니다.”라고 답한다. 이 작품에서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단순한 생물을 넘어 고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고, 더 상층부로 가기 위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관리자 (자신을 실패한 신이라고 부르는) 인공지능은 비록 생물이라고 불릴 육체는 없지만, 오랜 세월 살아오며 쌓아온 기억과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기 위해 협조해달라고 한다.

작중 내내 고찰되어오던 삶과 생명이라는 주제는 아무것도 없는 최상층에서 둘의 여행의 종지부이자, 또 다른 기나길고 행복한 여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다만, 이 둘의 마지막 여정이 지구에 영원히 생명이 끝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에린기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끝나면 지구는 이번 활동기의 휴식을 가진다는 식의 말을 하였기 때문. 인간이 사라지고 일단은 모든 생명까지, 인공지능까지 사라진 이후의 세상에 언젠가는 다시 생명과 삶이 싹틀 것이라는 암시를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끝없이 층을 올라가라는 의미로 위로 가라고 한 것일까? 아마도 할아버지가 의도한 것은 고작해야 한 층 정도 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시이가 있을 동안 서서히 작동을 중지하고 있었어도 식량 생산 시설이 가동하고 있었고, 해당 층에서는 전기도 공급이 되고, 수도도 나오고 있었으니까. 너희 둘이 오래 동안 먹을 식량은 충분하다는 말을 보면 그 편이 나아보인다. 주인공들이 할아버지의 말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식량을 가지고 좀 더 있을 수 있는 상황에도 상층에 대한 희망과 궁금증을 가지고 절망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단순히 설정 조차 없을 수 있지만 작품을 보고 난 뒤에 의문이 드는 점…

질문 : 근데 왜 하층으로는 가지 말라고 한 것일까?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작품에서 다른 도시를 향해 항공하려는 이시이 에피소드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면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륙이지는 않지 않은가 싶다. 바다 근처라면 분명 자연도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바다 근처래도 실제로 하층부는 아예 사막이던가… 한걸까? 최하층부에 대한 묘사는 에필로그의 해안가가 끝이기에 궁금하다.

질문 : 왜 층상구조의 도시가 만들어진 것일까? 층상구조 자체가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지구온난화나 사막화 등으로 인한 층상구조라면 몇십층 짜리 건물들이 있을 수 있는 보기에도 한 층의 층고가 못해도 500m ~ 1km는 되어보이는 층이 4층은 넘게 존재하는 것이 의문이다. 사실 작품 주인공들의 목표처럼 상층에 간다는 목표를 표현하는 것 자체에는 좋은 도시 구조이지만, 그렇게 된 개연성은 설명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단순히 인구 증가에 의한 층상구조라기엔 뜬금 없는 3층의 핵잠수함은 뭔가 싶고..

질문 : 에린기는 왜 주인공들을 막지 않았을까? 작중 에린기들은 “둘 이외에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지는 못 했다. 최상층 외에 모든 층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에린기들은 주인공들에게 최상층으로 가는 탑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런데, 사실 하늘을 자유롭게 부유하는데다가, 이 지구라는 별의 흥망이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는 존재이다. 또한, 작중 죽은 사람은 아마 에린기들이 처리하는 것이 작중 어느곳에도 유해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실한데도, “살아있는 사람은 먹지 않는다”는 식의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식의 언변을 볼 때, 이미 최상층은 조사를 못 한 것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어 안 한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단순히 에린기는 중립이기 때문에 다른 추가적인 정보 제공없이 주인공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줬을 뿐 인건지…

Categories: 미분류